배려 기다림 그리고 공존
봄이 오면
글.그림 박경진/길벗어린이
2008.10.4 정리: 백혜리
작가소개
박경진 선생님은 1962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에서 서양화를 공부했다. 지금은 춘천에서 가까운 과수원이 딸린 시골집에 살며, 그림책을 만드는 행복감에 푹 빠져 있다. 그린책으로는 ‘팥죽 할멈과 호랑이’가 있다.
들어가며
하루 일을 마치고 딸(서경, 초등2년)과 함께 집으로 돌아온 시간은 밤 9시가 조금 넘은 시간. 씻고 자야 할 시간에 서경이는 숙제로 그림책을 만들거라며 밥상머리에 앉았다. 지난학기 아파서 학교를 쉬었던 선생님께 드릴 선물이라며 그림책을 만드는 딸아이 덕에 ‘봄이 오면’을 읽게 되었다. 서경이는 그림책 ‘봄이 오면’을 꺼내더니 도화지를 접고 따라 만들기 시작했다. 그림을 잘 따라 그릴 자신은 없는지 쪽마다 전혀 닮지 않은 그림을 그리면서도 이야기는 그대로 따라 적기에 왜 그러냐 했더니 재밌어서 그런단다. 그래서 옆에 앉아 읽어 보았다.
여운이 남았고 지친 내 몸과 마음에 따스함을 주었다.
줄거리
깊은 산속에 사는 꼬마 곰과 어린 여우는 친구다. 겨울이 다가오자 꼬마곰은 겨울잠을 자러가려 한다. 그러나 어린 여우는 사나운 들깨 떼를 피해가며 먹을 게 없는 겨울을 혼자 지내기가 두렵다며 꼬마곰을 붙잡는다. 꼬마곰은 봄은 금방 올거라며 어린 여우를 열심히 달래지만 어린여우는 시무룩하기만 한다. 그 때 흰눈이 내리고 어린 여우와 꼬마곰은 눈밭을 뒹굴며 신나게 놀았다. 겨울잠을 자러 가야 하는 꼬마곰은 가끔 하품이 났지만 둘은 노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런데 그때 빠악 빠악 ... 조용한 숲속에 커다랗고 이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두려움에 떨며 소리 나는 곳으로 가보니 뜻밖에도 겨울이 오기 전에 땅속으로 미처 들어가지 못한 청개구리 한 마리가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둘은 열심히 땅을 파서 청개구리의 따뜻한 잠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청개구리를 잠재우고 난 후 어린 여우는 아기곰이 겨울잠을 자지 않으면 청개구리처럼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생각에 잠겨 있던 어린여우는 꼬마곰에게 겨울잠을 자러 가라 한다. 꼬마곰은 어린 여우를 혼자 두고 갈 수 없다며 거절한다. 그러나 어린 여우가 봄이 오면 다시 만나 재미있게 놀 것을 약속하며 재촉하자 꼬마곰은 못이기고 겨울잠을 자러 간다. 봄이 와서 다시 만나면 자는 동안 자신이 꾼 꿈을 들려주겠다고 하면서. 어린여우는 나무 밑 굴속으로 자러 들어가는 꼬마곰을 웃으며 배웅하고 겨우내 눈꽃이 얼마나 예쁜지 꼬마곰에게 말해주겠다고 약속한다. 마침내 기다리던 봄은 오고 마음이 훌쩍 자란 모습으로 만난 어린 여우와 꼬마곰은 꽃이 만발한 잔디밭에 앉아 서로가 경험하고 꿈꾼 이야기로 함께 하지 못했던 시간을 메운다.
그림(자연)이 주는 평온함
그리움을 가득담은 반쯤 감긴 눈을 한 어린 여우가 꿈꾸듯 살며시 웃는 표지 그림에서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느낌을 받았다. 제목을 보고 그림을 다시 보니 봄을 기다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얀 겨울을 담은 표지를 넘기니 푸르름이 짙은 여름이 펼쳐진다. 그리고 이야기는 가을에서 시작되고 겨울을 보낸 다음 꽃피는 봄에서 끝을 맺었다.
잔잔한 이야기만큼 그림이 조용히 그려져 있다. 잠깐 나타난 청개구리를 제외하면 다른 것은 하나도 없이 어린 여우와 꼬마곰만이 평화로운 숲속에서 즐겁게 뛰놀고 있다. 가을 낙엽이 무성한 동굴안으로 숨으며 술래잡기를 하고 눈밭을 뒹구는 꼬마곰과 아기여우를 보니 내 어릴 적 놀던 모습이 자연히 떠올랐다. 나트막한 산등성이는 어린 시절 동무들과 오르던 뒷동산을 닮았다. 지금 산에 오르면 꼬마곰과 어린 여우를 만날 것만 같다.
봄(성장)을 맞기 위한 진통
하루하루가 정신없이 돌아가는 세상이다. 경제적인 풍요로움보다는 마음의 풍요가 그리운 세상이다. ‘봄이 오면’에서는 바쁜 세상이 없다. 행복과 평화가 있을 뿐이다. 친구와 함께 다시 봄을 맞이하기 위한 진통이 있다. 기다림은 한층 더 성숙한 모습으로 친구를 만나는 일이기에 외롭지 않았고 행복하게 견딜 수 있는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나를 비워야만 성장할 수 있었다.
나가며
짧은 이야기지만 많은 여운이 남았다. 그 느낌을 배려, 기다림 그리고 공존이라 하고 싶다. 엄마와 아이가, 아빠와 아이가, 아이가 친구와 함께 읽으면 좋겠다. 공존한다는 것은 시간과 공간을 함께 하는 것 이상을 요구한다. 서로를 배려함이 없는 공존은 껍데기에 불과하다. 배려는 기다림을 요구했고 서로를 성장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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