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책꽂이에 꽂혀 있던 부엉이와 보름달을 우연히 보고 책속 주인공을 부러워한 것이 1년도 더 전이다. 발제를 위해 다시 읽었다. 읽고 나니 잠들어 있는 우리 아이들에게 눈길이 갔다.
어른이 되기 위한 통과의례 같은 이 이야기는 옛날 우리 조상들의 성인식을 연상케 했다.
처음 책을 읽었을 때 우리 아이들이 자라면 나이에 맞는 대접을 해 주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 같다.
줄거리
추운 겨울 깊은 밤 작은 여자 아이가 아빠와 부엉이를 만나러 숲으로 들어간다. 달빛이 밝았지만 겨울밤은 추웠고 숲속 깊이 들어 갈수록 무서움이 커졌다. 그러나 아이는 추위와 어둠을 극복하고 마침내 간절히 보고 싶어 하던 부엉이를 만나고 돌아온다.
글과 그림에 대한 느낌
마음속으로 혼자 책을 읽을 때는 내용에 잔잔히 감동되어 읽었다. 아이들을 앉혀놓고 읽어주니 감정이 더 삽입되어 그런지 한편의 시를 읽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아이의 일기를 읽는 듯 내용이 생생하게 살아 다가왔다. 다 읽고 작품과 작가에 대한 소개 글을 보니 글쓴이 제인 욜런이 고등학교 때부터 연극대본과 시를 썼다고 적혀있었다.
그림도 내 마음에 쏙 든다. 처음에 표지 그림이 내 눈길을 끈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내용을 보고 다시 읽을수록 그림이 마음에 든다. 표지 그림도 그렇다. 달이 휘영청 밝지만 어둠이 주는 푸르스름함이 깊은 밤임을 알게 한다. 요즘엔 달도 별도 가로등 불빛에 밀려 세상을 비추는 일을 못하지만 어릴 적 나는 분명이 대낮같이 밝은 달을 보았다.
빨간 목도리를 감고 털모자를 눌러쓰고 두꺼운 외투를 입고 목이 긴 부츠를 신은 작은 아이가 문을 열고 눈이 내린 겨울 숲을 바라보고 있는 그림에서 두려움과 긴장감이 느껴진다.
첫 장으로 들어오니 밝은 한 폭의 그림이 펼쳐진다. 추운 겨울밤의 잠잘 시간이 한참 지났으리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 밝은 첫 장을 넘긴 후 뒤로 갈수록 겨울밤의 숲속이 정체를 나타내고 있다. 앙상한 가지와 눈에 덮인 나무들이 간간히 눈에 띄는 숲속 동물들에 의해 살아있음이 느껴졌다. 아이와 아빠의 길게 드리운 그림자와 나무 그림자의 조화는 인간과 자연의 일체감을 주었다. 숲이 깊어질수록 오래된 큰 나무들은 어둠으로 긴장감을 주지만 하얗게 뒤덮인 눈이 환하게 빛남으로서 아이에게 용기를 주고 있다. 손과 발이 꽁꽁 어는 추위를 참고 걸어 걸어 숲길을 가서 마침내 만난 부엉이. 아빠가 비춘 손전등의 노란빛이 스며든 듯 화면을 가득 채운 부엉이의 노란 눈은 엄숙함과 강인함으로 가득 차 있다. 서로를 응시하는 그 순간은 찰나였을지도 모르지만 그것이 주는 감동에는 영원함이 있다. 아빠와 아이를 뒤로 하고 힘찬 날개 짓으로 날아가는 부엉이의 모습에서도 강인함이 느껴졌다. 무사히 의식을 마치고 아빠의 품에 안겨 집으로 돌아오는 아이의 모습에서 아버지의 따뜻한 사랑을 보았다.
어른이 되는 통과 의례
이 책을 보았을 때 우리의 성인식이 떠올랐다. 옛날 우리 조상들은 자식이 15~16세의 나이가 되면 어른으로 대접하고 부모라 할지라도 함부로 이름을 부르지 않고 말을 할 때도 ‘하시게’와 같은 존대어를 썼다고 한다. 그때 나도 아이들이 중학교를 가면 어떤 의식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우리 집 세 아이에게 주인공 여자아이가 몇 살쯤 되어 보이냐 했더니 6~8세라 대답했다.
내 아이들은 셋 다 이 나이를 넘어섰는데 나는 부려먹고 싶을 때(“니가 아기가 실내화도 못 씻게...”)만 어른 대접을 한다.
나라마다 풍습이 달라 성인식을 치르는 모습과 의미는 다르겠지만 자식은 내 소유물이 아니고 아이들은 자신의 세계를 자기식대로 맘껏 펼쳐 나갈 권리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것이 어떤 이름으로 불리던 상관없이 말이다.
의식에 대한 나의 편견 쬐끔 무너뜨리기
최성애(인간발달학)교수는 ‘모른다’의 의미를 다음의 세가가지로 정의하고 있다.
모른다- 편견을 버리고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보겠다는 약속
모른다- 함께 커 나갈 수 있는 희망의 터전
모른다- 자녀 대신 결정하지 않겠다는 뜻
헬리콥터 부모라는 신종어가 생긴 요즘 세상에서 적어도 나는 내가 죽을 때까지 아이들의 머리 위를 빙빙 돌며 보살피는 헬리콥터 부모는 되지 않을 거라 자신하지만 내 아이를 나는 ‘모른다’라는 생각으로 대하고 있는가? 깊이 반성할 일이다.
또 하나, 부모들의 자녀 양육태도를 보고 ‘천박한 경험’이라 했던 어느 작가의 말을 떠올린다. 나도 늘 내 좁은 경험의 잣대로 아이를 걱정하고 훈계하며 살고 있다. 소름이 돋는다.
형식보다는 내용에 무게를 더 두는 나의 사고방식과 생활모습은 아이들의 생일과 많은 기념일들을 가벼이 넘기게 할 때가 많다. 그러나 마음이라는 것이 드러내지 않으면 알기가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애정 섞인 잔소리’가 아닌 ‘말없는 의식’으로 아이들에게 사랑을 전 할 방법을 찾아봐야겠다.
